오늘은 현대 F1 racing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 스페인의 Fernando Alonso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알론소는 2001년 이탈리아의 소규모 F1팀 미나르디(Minardi)소속으로 Australia Grand Prix(GP)에서 데뷔했습니다.

같이 데뷔한 핀란드의 키미 라이코넨(Kimi-Räikkönen)과 함께 주목받는 신인이었지만 주목도는, 상당한 미남에 4차원적 캐릭터의 컬트적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라이코넨 쪽이 좀 더 높았습니다. 

그후 2002년부터 르노 F1팀으로 이적, 테스트 트라이버로 활동하였고,2003년부터 정식 드라이버로 활동하게 됩니다. 2003년 Malaysia GP에서 최연소 폴포지션, Hungary GP에서 F1 최고 레전드 Micheal Schumacher의 동생 Ralf Schumacher를 물리치며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데뷔 시즌을 시작합니다.

알론소는 2005년 시즌에는 7승을 기록하면서 Ferrari의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cher)의 6년 연속 Driver Championship우승을 저지하며, 5년간 F1을 재미없게(?) 만들던 슈마허를 제치고 2005 시즌 챔프를 따내며 최연소 드라이버 챔피언십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시즌 1위가 확정되는 순간, 새로 탄생하는 영웅의 포효하는 모습은 F1 역대 장면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의 하나로 꼽힙니다.

(이 기록은 이후 영국의 루이스 해밀턴(Louis Hamilton)과 독일의 세바스찬 베텔(Sebastian Vettel)에 의해 차례로 깨지게 됩니다.) 

2006년 시즌에도 7승을 기록, 최연소 더블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 기록을 세우며 (이 역시 후일 세바스찬 베텔에 의해 깨지게 되는데) 2년 연속 Schumacher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F1을 대표하는 선수로 등극하게 됩니다. 

이후, 슈마허는 2006 시즌 1위 알론소를 추격하며 이탈리아 GP에서 우승, 대반격에 나섰으나 winner ceremony후 기자회견에서 갑작스러운 은퇴선언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알론소가 최연소 챔피언이 되었던 machine은 르노팀이 2005년 발표한 R25모델이였습니다.

르노팀은 R25 Driver로 알론소와 지안카를로 피시첼라(Giancarlo Fisichella-Italy) 등 두 명의 젊은 드라이버를 선발하여 2005년 F1그랑프리 총 19전의 경기를 치루었습니다. 

R25는 새롭고 강력한 V10엔진과 심플한 뉴 바디, 개선된 샤시 등으로 머신 성능이 한층 업그레이드 됐고 전 버전인 R24의 문제로 지적된 코너때 언더스티어 현상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르노팀 패트릭 포레(Patrick Faure) 사장은 “르노팀과 R25는 페라리에 대적 할 수 있는 유일한 팀으로,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며 자신감을 표명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모델이였고, 그 기대에 부응하여 2005, 2006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됩니다.

R25는 2005 시즌 'Drivers'와 Constructors' Championship 두 상을 모두 휩쓸게 됩니다. 



 이 모델은 프랑스의 작은 F1 모델 공방(workshop)인 Apole사에서 제작인 1:6스케일의 대형 모델입니다. 

세계 100대 한정판으로 제작되어 1번은 알론소에게 기증되었습니다. 

대형스케일의 웅장한 모습과 더불어 정밀한 디테일 묘사, 깔끔한 데칼 등이 돋보이는 희귀 모델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5 시즌 Champion이 확정된 후 환호하는 Alonso>




안녕하세요? 오늘 소개할 모델은 Mercedes-Benz 500K입니다. 

1934년 500K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차와 같이 보여졌습니다.

500K는 Mercedes-Benz의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최고의 명작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으며 당시 발매 가격은 26.000마르크로, 독일 부촌의 넓은 빌라를 구할 수 있는 수준 이였습니다. 

접이식 좌석, 움푹 들어간 라디에이터로 이루어진 이 커다란 2 door 자동차의 디자인을 설명하는 단어는 “가슴 셀레이는~’이라는 표현이였습니다. 

기다란 보닛과 흙받이의 곡선, 2 개의 큰 직경의 엔진 덮개 오른쪽에 위치한 크롬 배기관, 우아한 인테리어가 만들어 내는 놀라운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자태였습니다. 제원은 수냉식 8기통 100마력 총 길이 5m 중량 2,250 kg, 연비는 100km 당 27리터 였습니다.

특히 25대만 제작된 Special Roadster버전은 동시대의 자동차들 중 단연 top급 이였으며, 이미 고급 모델이였던 500K모델의 다양한 version중에서도 그 중심에 있는 보석중의 보석이였습니다 

당시 시속 100km는 일반적인 고급형 자동차들의 속도 장벽으로 생각되었지만 이 모델은 160km까지 낼 수 있었고 제로백 20초로, 영국의 한 유명한 언론인은 ‘게르만의 야수 (Teutonic Beast)'라고 평가 하였습니다. 

이 모델의 유일한 흑역사는 히틀러의 나찌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였습니다.

나찌의 지원과 협조 아래서 이 모델이 진화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 모델의 우아함과 이후 자동차 산업에 미친 영향을 폄하시킬 점은 아닐 것입니다.

이 모델은 역사 다큐멘터리 영상에 많이 등장하는데, 히틀러나 나찌의 고위 간부가 탑승하는 모습이였고, 특히 히틀러가 500K시리즈를 매우 좋아 하여 개인 소장하고 있었고 그 소장품은 다행히도 전쟁의 폭격을 피해 현재까지 전해 지고 있습니다. 

500K의 엔진 출력을 높인 1939년식 770K Grosser Offener Tourenwagen 모델은 히틀러가 1939∼1941년에 대중 퍼레이드할 때 사용한 차량이며 1940년 프랑스 점령 후 베를린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행사를 벌였을 때도 사용하였습니다.

지난 18년 1월  미국 애리조나 스코츠데일(Arizona Scottsdale)에서 열린 경매에 익명의 러시아 갑부가, 히틀러가 사용하던 이 차량을 출품하였으나 7백만불(약80억원)의 offer price에 도달하지 못하고 유찰되었습니다.  

독일의 모델 메이커 Bauer사에서는 Pre-war시대의 최고 명작인 이 모델을 1:12스케일 Exclusive 모델로 최고 고퀄 레플리카를 발매하였습니다. 

2000여개의 다른 재질의 개별 부품으로 수작업 조립되었고 worldwide 2,000개 한정판으로 발매 되었습니다. 

Swiss chronograph의 정밀함으로 다양한 소재가 결합되어 독특한 걸작을 제작하였으며 날카롭게 묘사된 계기판과 인테리어는 럭셔리한 멋을 더하였습니다.  

숨막히듯 정밀하게 표현된 각 파트의 디테일은 진정한 art craft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품 replica의 풍모를 연출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에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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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Nuremberg 'Diecast Fair'에 출품된 500K>

 



영화속에는 수백 수천개의 Car scene과 그로 인해 관객들의 기억에 남은 수 많은 자동차들이 있었지만, 그 시대에 영향을 주고 자동차 문화에 영감을 주었으며 많은 어린이들의 꿈의 소재가 되었던 명차와 그 주인공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런 영화속 명차들의 명장면 10선을 살펴보겠습니다. (무작위)


1. Ford Thunderbird 1966 - Thelma & Louise

헬리콥터와 경찰차에 의해 벼랑 끝으로 몰린 델마와 루이스는 그랜드 캐년의 절벽으로 내달으며 마지막의 충격적인 장면을 연기합니다. 썬더버드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은 마치 하늘로 승천하는 동화 처럼 로맨틱한 인상을 주기도 하였지만 쇼킹한 반전의 결말을 보여준 명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델마와 루이스에 등장한 1966년형 Ford Thunderbird는 두 여인의 자유를 향한 방황과 방랑의 종지부를 찍는 하늘을 나는 새를 상징하는 듯 합니다. 


2. Mini Copper 2003 - Italian Job

1969년 원작에는1969년형 Austin Mini Cooper 3대가 등장합니다. 

2003년 리메이크된 이 영화의 2003년형 미니 쿠퍼S 3대는 범인들을 태우고 하수관을 누비며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고 다이나믹한 사운드와 함께 LA 밤거리를 질주합니다.


3. Pontiac Le mans 1971- The French connection 

프렌치 커넥션에서의 카 액션은 영화사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강렬한 장면으로 꼽힙니다.

형사가, 용의자가 탄 전철을 추격하며 시카고 거리를 활주하는 장면은 영화사의 중요한 scene으로 꼽히는데 어떤 기교도 없이 'reality'로 촬영되었고. 이후 카 액션 영화의 교본이 되었으며, 이후1970년대 자동차 영화 붐의 원동력이 됩니다.  


4. Ford Mustang GT390 1968 - Bullitt

스피드광이었던 Steve McQueen이 직접 액션 신을 연출한 블리트는 3년 후 'French connection'이 등장하기 전까지, 최고의 카 액션 영화로 평가되었습니다. 

1968년형 Mustang GT390은 약 10분간의 카 액션 장면에서, 스티브 맥퀸은 단 한 마디 대사도 없이 터프한 표정과 남성미 물씬 풍기는 땀내, 먼지내를 풍기며 시속 110마일의 속도로 샌프란시스코의 언덕길을 롤러코스터 처럼 질주하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5. Ford Deuce Coupe 1932- American Graffiti

스타 워즈(Star Wars)가 등장하기 몇 년 전, 조지 루카스 (George Lucas)는 1960 년대 캘리포니아의 자동차 문화에 대한 추억을 반영한 영화를 제작 하였습니다. 이 영화서 멋진 Hot rods들이 다수 등장하지만 그 중 단연 돋보이는 모델은 Ford Deuce Coupe 1932년형 이였습니다. 

무엇보다 '55년형 Chevy를 상대로 벌이는 Drag racing은 이 영화의 최고의 장면으로 꼽힙니다.


6.Aston Martin DBS 2008 - 007 Quantum of solace

수많은 자동차들과 명장면을 연출했던 007 시리즈 중 하나를 고른다는 것은 어려운 선택이지만 Quantum of solace의 애스톤마틴은 007시리즈의 베스트 장면의 하나로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악당들의 Alfa Romeo와의 추격 장면은 스릴 넘치는 코너링과 가속, 추격전 마지막의 대반전은 손에 땀을 쥐는 멋진 카 액션이 아닐 수 없습니다. 


7.BMW 735i 2002 - Transporter

Jason Statham이 운전하는 BMW 735i는 범죄자들을 안전하게 운반하는 '트랜스포터'로 등장합니다. 

프랑스 칸의 해변을 질주하며 만화와도 같은 운전 솜씨를 보이는데, 스테이덤은 스턴트 대부분을 직접 소화하며 쉴틈 없는 엑셀, 기어변속, 브레이크를 오가는 발재간을 부리며 후진 액션 마저도 비현실적인 드라이빙 실력을 보여줍니다.


8. Ford Mustang Mach1 1969- John Wick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1994년 Speed에서 LA시내를 질주하는 시내 버스일 것입니다. 그 20년 후 그가 직접 제작 한 영화 John Wick에서 Ford Mustang과 함께 그의 출연 영화중 가장 멋진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멋진 점은 어떤 CG 없이 실제 자동차로 실제 운전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리브스는 운전 학교에서 직접 드라이빙 기술을 익혔고 대부분의 스턴트를 연출해 냅니다. 


9. Ford FalconXB GT 1973 - Mad Max2

호주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미국 만큼의 내공은 부족합니다.1960 년대와 1970 년대에 미국 브랜드의 호주 생산차량들은, 미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초적인 muscle car들을 생산해 내는데 그 중 하나가 포드 팔콘 (Ford Falcon)이었습니다.

Mad Max 영화에서는 팔콘을 요격기(Interceptor)로 변형 시키는데, 거대한 조명탄으로 몸을 장식하고 그 밑에 커다란 타이어를 집어 넣었습니다. 추격 장면에서 보여주는 스위치 작동식 supercharger는 추격을 따돌리는 장치로 사용되는데 사실은 영화용 가짜 Charger였습니다. 


10. Dodge Charger 1970 -The Fast and the Furious 'Unlimited'

8편의 시리즈가 제작되었고, 이미 3편이 사전 기획중인 '분노의 질주'는, '자동차의, 자동차를 위한, 자동차에 의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액션이 과장되고 만화처럼 되어가는 듯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 보여지는 온갖 종류의 차들은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라 할 수 있습니다. 2011년에 제작된 언리미티드에서 Dodge Charger는 Vin Diesel이 운전하며 1편에 이어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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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Cars Top 10>


<자동차 애호가를 위한 영화 Top10>


1966년 Le mans 24h 대회의 1,2,3위를 휩쓸며 유럽세와 페라리의 독무대를 저지시킨 Ford GT40의 돌풍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됩니다.

1967년 포드팀은, 공기역학(aerodynamics) 개선을 위해 디자인 변경을 많이한 GT40 Mk IV모델로 레이싱 대회에 참가 합니다. Mk I 과 Mk III가 영국에서 제작된 것과 달리 Mk II와 Mk IV는 미국에서 제작됩니다

엔진은 Mk II와 같은 7.0리터 엔진을 사용하였으나 무게는 Mk II에 비해 140kg가벼워진 1,210 kg이였습니다. Mk IV는 67년 단 두번의 레이싱 대회에 출전하는데 Sebring 12h와 Le mans 24 hour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Ford 돌풍을 이어 갑니다.

세브링 대회 2개월 전 Daytona 24h에서 Ferrari 330 P4에게 패한 포드의 신화는 1966년에서 멈춰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Sebring대회를 위해 단 한대만이 만들어진 Mk IV가 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이어진 르망 대회까지 석권하게 됩니다. 

1968년과 1969년 Le mans에서는 4.9리터 엔진을 탑제한 Mark 1(Gulf version)으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GT40은 그동안 유럽 메이커와 경쟁에서 밀리던 미국 자동차의 위상과 자존심을 유지하게 됩니다.

GT40 역사적 상징성과 드라마틱한 성과로 오랜 기간 대중들에게 사랑받으며 미국인들의 영원한 드림카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1세대 Ford GT>

이 아메리칸 드림카는 이후 40년이 지나 2004년 포드 탄생100주년 기념으로 현대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1세대 Ford GT) 

headlamp 클러스터가 "100"으로 설계되었고, GT40이란 이름을 사용하려 했으나 저작권 이슈 때문에 GT40이라는 이름을 사용 못하고 GT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습니다.


<2세대 Ford GT>

2015 년 북미 국제 오토 쇼 (North American International Auto Show)에서 새로운 포드 GT가 소개되고 2016년에 생산 / 출시 되었습니다. 1966 년 르망 승리 이후 50 년이 흘렀습니다.

오리지널의 이미지를 잘 간직한 모습으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 더해 졌습니다.프론트와 리어 프레임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고, 차체패널은 Carbon Fiber로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GMP사는 MarkII에 이어 Mark I, Mark VI 1:12스케일의 모델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도색과 엔진, 운전석등 디테일과 표현이 Mark II 보다 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두100~300대 한정판만을 생산하여,(도산한 GMP영향으로) 현재는 당초 발행가격보다 2~3배의 프리미엄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홍콩의 모델제조사인 TSM사에서 2세대 GT모델 1:8 대형스케일을 발매하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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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d GT40와 Le Mans> - 영상 굿 (자막)



오늘은 1960년대 중후반 레이싱계를 풍미했던 Ford GT40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60년대 초, 당시 레이싱계는 독보적 One top, Ferrari의 수년간 독주가 이어집니다.

특히, 성능과 내구성 테스트에서 최고의 대회로 꼽히는 프랑스 Leman 24H 대회에서 1960년 부터 1965년까지 6년간 페라리의 아성은 무너질 줄 몰랐습니다. Ferrari 250 Testa Rossa와 Ferrari 330 TRI-LM 등을 앞세운 페라리팀은 그 누구의 추월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초,Henry Ford 2세는 기업홍보와 이미지 향상을 위해 모터 스포츠에 진출하기로 결정하고 프랑스의 Leman 24H 내구 레이스에 참여 하기로 하였지만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포드는 빠른 기술과 경험 습득을 위해, 1960년대 초 르망 대회를 독주하던 페라리를 인수하려 합니다. 포드는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페라리 자산 감사와 협상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협상이 끝나갈 무렵 레이싱 부문에서 'FORD' 마크 없이 단독 출전을 원했던 페라리는 돌연 협상을 취소합니다. 페라리의 일방적인 협상 파기에 화가 난 포드 2세는, 페라리를 타도할 차량을 제작하라고 지시합니다.

포드사는 다른 레이싱 팀인 Lotus, Lola, Copper 쿠퍼 등과 협상을 시작합니다. 쿠퍼는 F1에서도 성적이 쇠퇴하는 중이였고 GT레이싱은 참가한 경험이 없었습니다. 로터스는, 'Lotus-Ford'라는 이름을 동시에 달고 참가하기를 원했고 태도도 딱딱했습니다.

롤라는 당시 발전된 레이싱 기술과, 특히1963년 르망 대회에서 좋은 성능을 보여줘. 결국 롤라가 파트너로 선정되어, ford V8 엔진을 롤라의 Mark 6에 탑재하기로 합니다.

GT40은 처음에는 'Ford GT'라고만 불렸는데, 대회 규정을 맞춘 낮은 차체 높이(40.5 inch) 때문에 GT40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1964년 처음으로 르망 24시에 출전한 3대는 모두 탈락하고. 1965년에도 4대가 출전했지만 4대 모두 탈락하고 맙니다.

그러나 1966년 6월 19일 GT40 Mark 2는 샤시와 엔진을 강화시키고 참가한 레이스에서 1,2,3위를 휩쓸게 됩니다. 

페라리의 7년 연속 우승을 저지하고 미국의 브랜드로써 첫 르망 대회 우승과 1,2,3위를 석권하는 대 쾌거를 이루며 미국 자동차의 역사적 순간을 맞이 합니다. 

이후 67,68,69년도 르망 대회에서도 Ford GT40의 신화는 계속됩니다. 


미국 자동차의 역사적 상징을 대변하는 모델로, 수많은 replica의 테마가 되었지만 그 중 미국의 Exoto사에서 출시한 1:10스케일 모델 2종과 GMP의 1:12 스케일 시리즈가 가장 높은 정밀도와 high-quality를 자랑합니다. 

레이싱카 초정밀 모델 전문 업체인 미국 Exoto사의 1:10스케일 모델은, 1위 (Bluce Mclaren & Chris Amon의 No.2 Black)과 2위 (Ken Miles & Denis Hulme의 No.1 Blue) 2종을 제작하였습니다. 

1위의 상징성에도 불구 아름다운 데칼 디자인으로 2위 모델이 더욱 인기가 있고, 고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Exoto 모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초정밀한 detail과 금속과 원재료등을 사용한 사실 묘사, 숨막히는 정교함이 잘 표현된 걸작중의 걸작으로 이미 오래전 완판된 덕후들의 wanna-be 아이템입니다. 

GMP사의 1:12스케일 모델 역시 섬세한 디테일과 표현력에서(Exoto보다는 덜하지만) 인기있는 고퀄 모델이며, 무엇보다도 GT40 시리즈 모델을 완성시킨 공을 인정해야 할 듯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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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to 제품 review 영상>




안녕하세요? 오늘은 독일 Audi의 전신인 Horch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호르히(Horch)는 Benz의 엔지니어였던 August Horch가 1899년 A. Horch & Cie라는 회사를 쾰른에서 설립하여 세단, 스포츠카, 소형차 등을 제작하였습니다. 

1904년 회사를 공개한 호르히는, 자신만의 경영 스타일을 고집하다 1910년 다른 경영진과의 마찰로 (애플의 Steve Jobs가 그랬던 것 처럼) 이사회에 의해 그가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나고 호르히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회사를 다시 시작했으나 이전 동업자들이 그를 상표법 위반으로 고소하고, 독일 법원은 호르히 상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합니다.

호르히는 그의 이름을 포기하고 독일어로(Horch: ‘듣다’)의 라틴어인 아우디(Audi)를 사용합니다. 그 후 1932년 1차 대전후의 독일 경제불황, 은행과 독일 작센 주정부의 압력으로, 호르히 주도의 (역시 잡스가 그랬던 것 처럼) 작센 지방의 대표적인 자동차 업체들인 반더러(Wandere), 데카베(DKW), 호르히(Horch), 아우디(Audi) 4개사가 합병하여 Auto Union을 설립합니다.

합병후에도 각사의 장점을 살린 개별 브랜드로 출시하였으나 통합 레이싱팀 Auto Union은 현재 아우디의 ‘4개의 연결링 (4 rings)’ 엠블럼을 사용합니다.


Horch 853는, 4개사 중 고급 대형세단에 강점을 지닌 호르히가 1937년에 제작한 고급형 Roadster입니다.

5.0리터 직렬 6기통 엔진으로. 럭셔리한 스타일과 고급 인테리어로, 당시 7대만 제작되었고 현재는 단 3대만이 남아있어 매우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그 가치는 (최고가로 평가 받는) 동 시대의 Bugatti나 Rolls Royce와 맞먹습니다.

특히, 매년 California Pebble Beach에서 벌어지는 유서깊은 클래식카 모터쇼인‘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에서 ‘Best of show 2009’의 명예를 차지합니다. 

이 명작의 상징성과 아름다움으로 수 많은 모델 메이커들의 주제가 되었습니다만, 그 중 으뜸 퀄리티를 자랑하는 이 모델은 CMC라는 독일의 유명한 모형 제조사의 1:12 대형 스케일 제품입니다. 


한정판이기도 했지만 그나마 중국 조립공장에서 제작 frame이 분실되어 예정 수량을 찍기도 전에 생산이 중단되 더욱 레어템이 되버린 모델입니다. 

세계 최고 모형제조사의, 수천 part의 다른 재질의 piece들을 수작업으로 야무지고 탄탄하게 재현하여, 그 퀄리티는 오리지날의 우아함과 엘레강스를 고스란히 (오히려 大觀小察의 관점에서 더욱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Horch 853이 출시되기 전인 1935년, Auto union은 이 차의 전신인 Audi front 225 roadster를 출시하고 Berlin motor show에 등장시킵니다. 

아우디 프론트는 당시로는 세계 최초의 전륜 구동 roadster로 얼마 후 출시되는 Horch 800시리즈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이 모형 또한 CMC에서 1:18스케일의 중형 사이즈로 4종이 출시되었는데 이 또한 디테일과 표현에서 덕후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모델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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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C Horch 853 review 동영상>


   

 안녕하세요? 오늘 소개할 모형은 Bugatti Roadster Esders 1932 1:18 모델입니다.

슈퍼카로 잘 알려진 부가티는 1909년 이탈리아계 프랑스인 Ettore Bugatti가 프랑스에 설립한 고급자동차 전문 회사입니다.

설립 당시부터 독보적인 최고급 차량만을 고집하며 여러 명작들을 만들어 냈지만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대중과는 거리가 먼, 지나치게 비싸고 사치스러운 모델만 생산했기 때문에 몇번이고 파산하며 여러 주인이 바뀌며 오늘날은 독일 Volkswagen 계열에 속해 있습니다.

1909년 설립 당시부터, 모든 차량은 손으로 제작되었으며, 엔진을 제작할때 별도의 밀봉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각 부품이 완벽히 들어맞을 때까지 일일히 손으로 깎아 모양을 내는 등, 애초에 대량 생산은 기대할 수 없는 시스템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차량 하나하나에 엄청난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다는 의미로, 특유의 뛰어난 마감과 내구성 그리고 심미성으로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luxury car 회사 중 하나였습니다. 부가티의 완벽주의는, 경쟁사 벤틀리의 차들이 견고하나 마감이 좋지 못한 달구지(Cart)에 비유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Roadster Esders 1932형은 에토레의 아들 Jean Bugatti에 의해 디자인되고 기획되었는데 8 cylinder, 24밸브의 300마력 엔진에 최고 속력 160km/h을 냈으며 6미터가 넘는 차제에 3톤이 넘는 어마한 크기로, 연비도 리터당 2.5km밖에 안되는 매머드급 차량이였습니다.

당시 6대만 제작되어 3대만이 팔렸는데 그 첫 구매자가 프랑스의 의류 사업자 Armand Esders였는데 그 후 이 모델의 닉네임이 Roadster Esders로 지어졌습니다. 모델의 특징은 영롱한 녹색계열 컬러 컴비네이션과 Headlamp를 뺀 디자인이였는데, 이것은 주문자인 에스더가 해가 진 후에는 운전하지 않는다는 습관으로 특별 주문 사항 때문이였습니다.


그 후 이 차는 몇번 주인이 바뀌었는데 그 이유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 후 6대의 에스더 모델은 세상에서 사라지고, 이 모델의 재현을 위해 단 6장의 흑백사진과 당시 설계도를 바탕으로 수년간의 조사를 통해 복제품이 만들어져 프랑스의 Mulhouse Automobile Museum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모델은 독일 Bauer사 exclusive모델 제품으로 18가지의 다른 재질의 1400개 부품을 수작업으로 조립한 high quality모델입니다.

차체는 샤시와 분리되어 정밀하게 표현된, 실제 1.5m가 넘는 대형 엔진의 디테일과 정밀한 샤시 구조를 볼 수 있으며, 옵션에 따라 headlamp를 장착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 한 거울이 달린 wood 장식대가 포함되어 display효과를 극대화 하였습니다.

Bauer는 이 밖에 high quality의 Bugatti 57SC, Bugatti Coupe de Ville, Mercedes 500K 등 소품종 이지만 최고의 퀄리티로 Classic의 명작 모델들을 출시 하였습니다. (다른 모델들은 이후 편에서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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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리뷰 동영상>


안녕하세요? 오늘 소개할 모형은 DeLorean DMC-12 1:6모형입니다.

DMC-12 GM출신의 John DeLorean'이 설립한 DMC(DeLorean Motor Company)가 제작한 유일한 스포츠카로 '안전하고 내구성있는 윤리적 스포츠카'를 모토로 81~83년간 미국시장을 겨냥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영국정부가 이 회사를 지원하여 북아일랜드에 새로운 공장을 차리고 지원을 했습니다.

첫 프로토타입은 1976년에 폰티악에서 Chief engineer로 일하던 William T. Collins과 영국의 Lotus 합작으로 구상되었고 공식적인 생산은 1981년 북아일랜드의 Belfast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드롤리안의 상징적인 Gull-wing door와 로터스의 전통적이고 혁신적인 진공흡입 사출 성형방식을 이용하는 Steel Backbone Chassis, 섬유강화 플라스틱 몸체구조 등은 이 차의 독특한 개성과 매력을 발산 시켰습니다.

엔진은 르노 (Renault V6) 엔진을 차축뒤에 매달아 꽁무니가 무거운 구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종성은 뛰어났습니다. 엔진을 후방에 두어 차체 앞쪽은 연필처럼 가느다랗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과 드롤리안에 대한 비현실적인 시장 기대감으로 회사경영이 흔들렸고 DMC-12의 기대 이하의 빈약한 품질 때문에 판매가 저조해지자 회사는 금새 도산해 버리고 맙니다.DMC-12란 명칭은 $12,000 가격을 의도하여 지어졌고(현재 시세로 6~7만불) 출시 당시 $25,000까지 제안가격이 올라갈 정도로 고객 대기 숫자가 많았으나 회사 도산후에는 $10,000이하로 떨어졌습니다.

83년 생산중단때까지 9000대 가량 생산되어 2007년도 집계에 따르면 6500대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 되었습니다. 제로백은 8.8초에 달하는 high performance차량이였습니다.

95년, 미국 텍사스 거주 영국인 사업가 Stephen Wynne DMC상표를 부활시키고, 기존 재고부품과  생산설비를 가지고 주문자 생산방식으로 DMC-12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2017년 초 New DMC-12$100,000 가격대에서 출시 하였습니다.


DMC-12가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배경은 뭐니뭐니해도 영화 "Back to the Future"의 타임머신으로의 등장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감독 Robert Zemeckis와 시나리오 작가 Bob Gale 1981년 백투더 퓨쳐를 구상하면서, 타이머신 도구로 냉장고를 구상하였으나, 어린이들이 따라 하면서 사고 위험이 있을 것을 우려하여 자동차로 하기로 결정하고, 드롤리안의 미래형 디자인과 독특한 컨셉, 무엇보다도 걸윙 도어가 마치 UFO처럼 보이는 효과에 착안하여 이 차를 선택하였습니다.

영화의 히트와 함께 드롤리안은 단숨에 대중의 드림카가 되었으며 수많은 업체들에 의해 모형과 replica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형은 홍콩의 유명 피규어 전문제작업체인 Hot Toys사에서 만든 1:6 대형 스케일 모델로그동안 수 많았던 모형 보다 크고 정밀하게 제작되었습니다.

영화에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알루미늄 차제와 꼼꼼하게 조립한 외장 케이블링, 디테일한 엔진구조 묘사, 부드럽게 작동하는 걸윙도어, 그리고 수많은 내외부의 LED조명 기능등으로 2015년 여름 출시되자 마자, 유소년 팬들은 물론 영화를 보고 자란 성인 수집가들 사이에서도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작품으로 출시 후 얼마 되지 않아 완판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일본에서는 전자석을 이용한 부양모델 (Magnetic floating)을 출시하여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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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video clip>


오늘의 스토리는 원조Bentley의 마지막 걸작 Six Speed, 일명 Blue Train 1930년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Bentley Blue Train은  벤틀리의 창업자 오웬 벤틀리가 최고급 시장을 노리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모델로.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을 사용한 6.5리터 엔진은, 크고 무거운 자체로도 엄청난 성능을 보였고 고성능 차이면서도 부드럽고 조용한 주행으로 극찬을 받았습니다그러나 대공황 시기와 맞물려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고 경영난에 몰린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에 인수되어 그 운명도 다한 차입니다.

영국의 Walter Owen Bentley 1919년 자신의 이름을 딴 Bentley사를 세우고 1920년대 르망24 레이스에서 다섯번이나 우승을 합니다.

그 후광으로 4기통엔진 스포츠카 3리터와 4.5리터가 성공을 거두자 이에 고무된 벤틀리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더욱 크고 고급스러운 차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계획으로 당대 유명한 최고급 브랜드인 Rolls Royce, Bugatti, Mercedes등과 경쟁할 더욱 큰 Highend형 차를 만들기로 하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Bentley Six Speed였습니다.

1930년 런던 올림피아 오토쇼(London Olympia auto show)에서 첫선을 보인 이 모델은 당시 엄청난 크기로 영국에서 생산된 모든 승용차 가운데 가장 컸으며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체에 알루미늄 합금을 대부분 사용 하였으나 그 무게가 2톤에 가까웠습니다.

엔진은, 당시의 첨단기술인 실린더당 4밸브 구조와 점화코일과 twin spark점화 장치로 최고 출력이 203마력에 이르렀습니다.

최고 속력은 160km/h로 단 50초만에 도달하는 엄청난 가속능력은 당시로서는 최고의 성능이였고 롤스로이스 팬텀2, 벤츠, 부가티 type57등 라이벌 모델들과 비교해도 매우 우수한 성능이였습니다. 레이싱용이 아닌 일반 차량으로서는 경이로운 성능으로 큰 자체에도 불구, 조용하고 빠르며, 부드러운 최고의 퍼포먼스로 시장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모델은 (Blue Train Race) 참가한 것으로 유명한데, 블루 트레인 레이스는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반에 자동차 기차 벌인 레이스 입니다. 

프랑스의 칼레 (Calais) 칸느(Cannes)사이를 달리는 열차  트롤 블루 (Le Train Bleu ) 상대로 수많은 자동차가 레이스 벌였는데. 일종의 자동차의 성능 테스트를 위한 대결이 였습니다이 모델이 레이스에서 승리 Blue Train이란 닉네임이 붙여졌습니다.

그러나, 판매가 시작된 1929년 전세계 대공황이 유럽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주 고객층인 기업가들과 연예인들의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이후 벤틀리는 경영 악화의 길을 걸으며 결국은 모델 출시 9개월만에 경쟁사인 롤스로이스에 인수되었습니다.

벤틀리 설립자인 오웬 벤틀리가 최고의 열정을 쏟아부은 마지막 명작은 모두 100대가 생산되었는데 현재 70여대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오웬은 롤스로이스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을 건 제품에 열정을 담을 수 없게 되자 1935년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 후 벤틀리 라인업은 롤스로이스의 엔트리급 모델로 주저 앉고 맙니다.


이 모델은 독일 Minichamps사가 만든 1:18스케일 모형입니다.

오웬 벤틀리의 열정이 투사된 그의 마지막 걸작을 매우 섬세한 디테일과 수려한 green color도색을 통해 덕후들의 가슴을 설레게하는 모형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전면 그릴 파트와 headlamp, 벤틀리 로고가 발산하는 우아함과 부드럽게 작동하는 butterfly형 후드, 섬세한 엔진 묘사, 하체 샤시와 트랜스 미션의 디테일한 표현, 후면부 벤틀리의 ‘Flying B”로고가 새겨진 공구함과 공구 악세서리, 수려한 녹색의 고급 박스 packing까지벤틀리 모델 만큼은 premium급으로 만들어내는 이 회사의 고증과 기획력이 돋보이는 걸작으로, 지금은 시장에서 만나기 힘든 wannabe item이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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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champs 모델 소개영상>


안녕하세요? 그동안 밀린 글들을 한꺼번에 올리게 되네요^^오늘은 미국 자동차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GM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Harley Earl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1927년부터 1959년은 미국 자동차의 황금 시대이자 GM 황금기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GM은 Harley Earl 디자인 책임자로 일하면서 현대의 자동차 디자인 개념을 탄생시킨 시기였습니다.

Harley EarlCadillac, Chevoret, Buick, Corvette등 많은 라인업에서 수 많은 명작들을 디자인하며 ‘아메리칸 드림카의 아버지 (Father of American Dream Car)’란 명성과 함께 미국 자동차 역사는 물론, 세계 자동차 산업에 위대한 획을 긋게됩니다.

자동차 디자인 주문 제작업체 'Coach builder'를 경영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자동차 디자인에 많은 관심 갖게 되었습니다. 얼은 스탠포드 대학에 들어갔으나 공부보다 자동차를 만드는 게 더 흥미로워 대학 졸업후 아버지를 도와 고객이 주문한 차나 영화배우들을 위한 차를 제작하였습니다.

이후, 1927 GM에 입사해 많은 레전드들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첫 성과로, 당시 GM의 신모델이였으나 시장반응이 좋지 않았던 라살레(LaSalle) renovation을 책임지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갈아입혀 파격적으로 매출을 증가시킵니다

<얼의 첫번째 디자인 라살레>  

1930년대는 라살레 후속모델과 캐딜락의 디자인 개선작업을 계속했고. GM의 첫컨셉카인 Buick Y Job으로 최고의 카 디자이너로 등극하게 됩니다. Y Job에 적용된 Style과 기술은 1940년대에 GM의 황금기를 이끈 BuickCadillac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Lasalle 1935

<Buick Y Job>  

<1940년대 Cadillac과 Buick> 

1937년 GM디자인 총 책임자가 된 후 자동차 디자인에 새로운 개념을 적용합니다.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할때 스케치나 rendering에 그치지 않고, 목재와 Clay를 사용한 시제 모델을 제작 하였고, 이 방식은 그대로 현대의 디자인 개발의 기본 과정이 됩니다.

 더 길고 넓게, 더 저렴하게는 얼의 디자인 원칙이였고 이를 적용한, Electronic window와 Wheel, 메탈 소재의 데크와 항공기 타입의 Air cooling brake drum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기술을 도입하였습니다. 

Earl의 창의력은 1950년 Le Sabre에서 최고의 절정을 맞이합니다. 기능적인 Styling과 혁신적인 기술은 출시 당시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Le Sabre>  

이 모델의 디자인과 기술은 고성능 제트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파격적인 스타일링과, 혁신적인 기술, 액센트를 준 컨버터블 루프 등은 이후1950년대 출시된 GM 모델들에 적용됩니. 특히, 매끄럽게 빠진 기다란 차체 후면에 전투기 날개 디자인을 접목시킨 Tail Pin 디자인은 그 독창성과 창의성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1953~1961 8년동안 GM은 얼의 책임 아래 Motorama라는 Auto show를 운영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연구하였고. 이 시기에 쉐보레 코르벳(Chevrolet Corvette)과 노마드(Nomard), 엘도라도 브로엄(Eldorado Brougham) .GM의 레전드 모델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특히, 현재까지도 미국인의 자존심인 corvette은 영국의 MG나 Jaguar등 유럽의 날렵하고 심플한 우아미를 갖춘 디자인의 스포츠카들의 영감을 받아 이에 대응할 미국형 스포츠카를 만들기로 결심 하고, 1953년 첫 콜벳 모델을 출시하게 됩니다.

얼은 GM에서 1958년 은퇴할때까지 31년간을 근무하며, 그의 디자인으로 생산된 차량은 3,500만대에 이르렀고 6,000만대 이상의 차들이 그의 디자인에 영향을 받게됩니. 특히, 그는 헐리우드 배우들이나 엘비스 프레슬리등 대중들을 열광시키는 인기 스타들의 showmanship의 중요성과 파급력을 인식하고 자동차를 show의 개념으로 승화시켜 마케팅에 활용하게 됩니다. 1969년 75세에 플로리다에서 뇌졸증으로 세상을 떠나며 1986 Automotive명예의 전당에 등록됩니다

얼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미국 드림카 모형들은 이 시장에서도 중요 아이템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콜벳을 비롯한 이 당시의 많은 작품들을 재현하게 됩니다. 미국 자동차 산업과 문화의 황금기를 누렸던 시기의 콜벳, 쉐보레, 노마드, 엘도라도 등 수 많은 명작들을 기념하기 위한 고퀄 모델들이 미국 제조사인 Franklin Mint사나 Danbury Mint사를 중심으로 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들 미국 제조사들이 파산하거나 수익적인 문제로 생산이 중단되어, 만나기 힘든 희귀품들이 되어 가고 있으며. Autoart사 등 일부 아시아 제조사들의 중저가 제품들이 시장에 출시 되고 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에서 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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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 할리얼의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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